AI 시대, 도서관 사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AI가 정보를 자동으로 조직하는 시대, 사서는 여전히 신뢰의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이 글은 기술이 바꾼 도서관의 환경 속에서 사서라는 직업이 어떻게 다시 정의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AI가 모든 걸 찾아준다는데, 도서관 사서는 왜 필요하죠?” 요즘 자주 들리는 질문입니다. 검색창에 한 문장만 던져도 수백 개의 논문과 데이터가 순식간에 정리되는 세상, 이제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시대에 도서관을 찾는 발길은 줄지 않았습니다. AI가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를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엇이 믿을 만한지를 구별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지식을 자동화할수록, 그 지식의 의미와 신뢰를 판단하는 인간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서는 책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설계하고 맥락을 중재하는 정보의 건축가로 변하고 있습니다. AI가 효율을 담당한다면, 사서는 신뢰와 해석을 담당합니다.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한 책장 사이의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와 인간이 협업하는 지식 생태계의 허브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인공지능 시대에 사서가 맡게 된 새로운 역할을 기술·직무·윤리·공공성의 네 가지 축에서 살펴봅니다. 2035년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중심에 선 사람은 여전히, 그러나 완전히 달라진 방식으로 일하는 사서일 것입니다.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미래 도서관을 상징하는 이미지
AI 시대, 도서관 사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 AI 시대 도서관 사서의 변화

AI 이후의 정보 환경, 무엇이 달라졌나

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검색 도구를 넘어, 인류의 지식 생산과 유통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챗봇과 생성형 언어모델은 질문 한 번으로 논문을 요약하고, 뉴스의 관점을 재구성하며, 데이터까지 자동으로 분류합니다.

이 변화의 표면에는 효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신뢰·투명성·맥락의 결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AI는 ‘답’을 만들어내지만, 그 답이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모델이 폐쇄된 데이터셋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성된 정보의 출처를 역추적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정보 신뢰도에 대한 시민 불안이 가장 높은 분야는 AI가 활용된 자동 뉴스·학술 검색 영역”이었습니다. 즉,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신뢰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도서관은 다시금 ‘신뢰의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AI가 구조를 설계한다면, 도서관은 그 구조 속에서 진짜 지식이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사서는 바로 그 경계면에서 기술을 해석하고, 정보의 정확성과 맥락을 보증하는 지식의 감식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AI가 정보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 IFLA Global Library Trends, 2022

사서의 역할 변화: 자료 관리자에서 지식 설계자로

20세기 도서관의 사서는 ‘자료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보의 물리적 흐름—수집, 분류, 보존—을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보는 더 이상 책장 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이용자는 온라인에, 그리고 분류의 기준은 알고리즘이 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변화 속에서 사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기계가 분류를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지식의 설계와 의미의 중재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서는 단순한 ‘정보 관리자’가 아니라, AI 시스템과 협업하며 지식의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

AI는 명령에 충실하지만,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사서는 이용자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고, 그가 진짜로 알고 싶은 바를 명료하게 표현하도록 돕습니다. 2035년의 도서관에서는 ‘리서치 클리닉’이 핵심 서비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서는 AI가 제시한 자료 목록을 함께 검토하며, “어떤 순서로, 어떤 깊이로, 어떤 한계까지 접근해야 하는가”를 설계합니다.

분류 체계를 혁신하는 사람

AI는 데이터를 빠르게 분류하지만, 그 분류가 항상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분류 체계는 종종 특정 집단이나 주제를 배제합니다. 핀란드와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도서관은 ‘포용적 메타데이터’ 운동을 통해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사서는 데이터의 윤리적 엔지니어이자 사회적 번역자로서, 기술의 구조를 인간의 가치로 재정렬합니다.

지식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설계하는 사람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한 열람실이 아닙니다. 정보가 사람 사이를 오가고, 학습과 대화가 일어나는 지식 커뮤니티의 허브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서는 콘텐츠 큐레이터이자 기획자로서 주제별 자료를 큐레이션하고 시민 아카이브를 설계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서는 지식의 패실리테이터가 됩니다.

요약: 인간의 해석이 남는 자리

AI가 효율을 담당한다면, 사서는 의미를 담당합니다. 자동화가 정보를 정리하더라도, 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사람에게 적절한 맥락으로 전달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역량과 전문성

사서의 전문성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만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해석하는 힘, 이용자와 공감하는 감수성, 그리고 기술의 한계를 인식하는 윤리적 판단이 함께 요구됩니다.

기술적 역량: 데이터를 읽고 다루는 힘

AI 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문해력입니다. 사서는 기술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통해 AI의 결과를 해석하고, 그 의미를 검증해야 합니다.

인지적 역량: 해석하고 판단하는 힘

정보를 이해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능력, 즉 ‘지식의 내비게이터’가 되는 일은 사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AI는 사실을 제시하지만,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사회적 역량: 신뢰를 설계하고 협업을 이끄는 힘

AI 시대의 도서관은 기술 플랫폼이자 공동체입니다. 사서는 기관과 시민을 연결하고, 정보의 접근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윤리적 중재자로 활동합니다. 기술이 신뢰를 대체할 수 없듯, 사서의 인간적 통찰은 사회적 감각을 복원합니다.

왜 여전히 사람이 필요한가

AI는 대부분의 질문에 답할 수 있지만, “사람이 진짜로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가”를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사서는 이용자가 미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필요를 감지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꺼내는 안내자입니다.

사서는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그 정보를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합니다. 정보를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며, 이해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감정과 불안을 다루는 안내자

진로, 건강, 가족, 이민 같은 주제는 정보를 넘어 감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서는 이용자의 표정과 맥락을 읽으며 정보를 필요의 순서가 아니라, 이해의 속도에 맞춰 전달합니다. 이것이 인간만이 가진 리듬입니다.

기억을 지키고 맥락을 복원하는 사람

AI는 방대한 정보를 학습하지만, ‘지역의 기억’은 종종 그 안에서 사라집니다. 사서는 이런 조각난 기록을 찾아내고 연결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복원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은 데이터 센터가 아니라 기억의 생태계입니다.

신뢰를 설계하는 인간의 기술

AI가 만들어내는 지식은 확률에 기반하지만, 인간의 신뢰는 관계와 맥락에 기반합니다. 사서는 정보의 출처를 검증하고, 그 의미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며, 신뢰의 구조를 설계합니다.

사라지는 직업이 아니라, 재정의되는 직업

사서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와 함께 움직여 왔습니다. 인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인공지능. 그러나 그 어느 시대에도 사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변화를 해석하며, 지식과 사람을 잇는 방식을 새로 써 왔습니다.

AI 시대의 사서는 더 이상 책장을 돌지 않습니다. 대신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용자의 맥락을 이해하며, 정보의 의미 구조를 설계합니다. 기술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다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Information Sanctuary가 믿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사서는 이제 지식의 관리자에서 신뢰의 건축가, 맥락의 해석자, 공공 기억의 큐레이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AI가 정보를 조직하는 시대, 사서는 여전히 인간의 질문을 설계하고, 지식의 방향을 설계하며, 신뢰의 구조를 설계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정보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며, Information Sanctuary가 기록하고자 하는 미래의 얼굴입니다.

References

  1. IFLA. (2022). Global Library Trends and Statistics Report.
  2. OECD. (2023). AI and the Future of Work.
  3. ALA. (2024). Libraries and AI Policy Brief.
  4. 핀란드 문화교육부. (2021). Public Library Strategy 202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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